만나고 싶습니다 "박연수 충북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히말라야 무명봉에 세계 최초로 ‘직지봉’이라는 한국이름을 새긴 박연수씨(50). 그가 최근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네팔 오지 마을에 ‘직지초등학교’를 지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직지봉’을 얻은 것에 이어 히말라야에 ‘직지’란 이름을 또 한 번 새기게 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산, 새로운 인생의 시작
충청북도 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사)속리산둘레길 이사장,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조직위원장, 백두대간보전시민연대 집해위원장, 대한산악구조협회 이사, 녹색청주협의회 갈등관리단장, 히말라야 오지마을체험단장…. 박연수씨에게 붙는 칭호가 정말 많다. 박연수씨에 대한 호칭은 이번 인터뷰가 산에서 출발해서 산으로 끝나는 이야기이니만큼 앞에 나열한 호칭 중 히말라야 오지마을체험단장으로 부르기로 한다.

박 단장이 이제까지 걸어 온 길은 산을 빼 놓으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그에게 산은 중요하다. 고등학교 때 등산반 선생님의 입담에 홀려 처음으로 험준한 지리산을 종주했고, 이때부터 산에 푹 빠져 ‘산악인’으로 살았다. 대학 진학 상담 때 “나는 충북대학교 등산부에 가고 싶다.”고 말해 상담 교사를 당황케 했을 정도로 산에 미쳐있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지도교수 얼굴을 모를 정도로 시간과 틈만 나면 산에 갔다. 이런 그가 재학생 시절 충북대학산악연맹 회장을 맡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졸업 후 짧은 서울 직장생활을 접고 다시 청주에 내려왔을 때도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등산이었고, 곧 충북산악연맹 전무이사도 접수(?)했다. 이후 그는 국내에서 세계로 눈을 돌려 군 제대 후부터 그토록 가고 싶었던 해외등반에 대한 꿈을 실현하기 시작했다. 어렵게 비용을 마련해 후배들을 데리고 인도로 향한 첫 해외 원정을 출발점으로 그의 히말라야 탐험이 시작된 것이다.

직지원정대, 직지봉을 탄생시기다
그가 젊은 시절부터 열심히 벌여왔던 시민단체 활동도 산이 만들어준 인연이다. 백두대간 보전이라는 말에 솔깃해 후원자로 참여했다가 산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더 큰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게 됐다고 한다. 새천년이 시작되면서 산에 오르는 일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직지원정대’의 시작 역시 이런 그의 사명감이 배경이 됐다.
“‘직지’가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잖아요. 말 그대로 ‘최초’ 아닙니까? 도전과 창조정신이 깃든 우리 선조들의 자긍심이기에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만든 직지원정대의 원대한 포부는 ‘직지봉’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셀파도 없이 등반한 대원들의 교신을 기다리는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갔어요. 현지시간 16시 50분 쯤 정상부에서 환호성이 희미하게 들려왔습니다. 멈출 수 없는 기쁨의 눈물이 흐르더군요.”
2008년 6월 16일 지원조 없이 알파인 방식으로 출발한 직지원정대는 파키스탄 북부 카라코람 차라쿠사지역 6,235m의 무명봉 정상 도전에 나서 13시간의 사투를 벌인 끝에 정상을 정복, ‘직지봉’이라는 이름을 새기게 됐다.

“정상정복에 성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1년 전 낙석과 눈사태로 정상을 눈앞에 두고 물러나야 했거든요. 이후 많은 노력과 훈련을 했죠. 현지 마을사람들은 알고 있었어요, 우리 원정대의 목표를. 그래서 등반 성공 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우리가 오를 산을 ‘직지봉’이라고 불러줬어요.”
직지봉 등정 성공은 현지 마을주민들의 응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렇게 네팔의 오지 마을 사람들과도 친해지면서 히말라야와의 특별한 인연을 맺을 무렵 박 단장에게 불현 듯 기억하기조차 힘든 시련이 닥쳤다. 2009년 히말라야 히운출리(6,441m) 북벽루트 개척을 위해 등반에 나섰던 직지원정대원 2명을 잃게 된 것이다.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아픔을 이겨내기까지 5년이란 세월이 흘러야만 했으니까요.”


아픔을 딛고, 지구 오지마을 희망 전도사로
긴긴 고통의 시간을 딛고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난 박 단장은 다시 히말라야로 발걸음을 옮겼다. 히말라야에 묻힌 동료를 위해서도, 늘 따뜻하게 반겨줬던 현지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도 힘을 내야만 했다. 더구나 지진으로 전기도 끊긴 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을 생각하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작년 5월 지구촌 하나 되기 ‘나눔과 동행’팀을 꾸려 생활용품과 의약품 등을 들고 네팔 신두팔초크 카지롱 마을로 향했다. 현지에 직접 가보니 지진으로 인한 피해로 주민들의 삶은 말 그대로 피폐했다. 일단 집집마다 태양광을 설치해 전구를 달아주고, 곧 있을 우기를 걱정하는 주민들을 위해 임시 가옥을 지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 역시 무너져 내려 함석 60장을 가지고 임시건물을 지어줬다. 모금해 간 기부금을 학교 신축건물 건축에 쓰라고 전했다. 학교를 꼭 다시 지어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이런 그의 약속은 드디어 지난 6월 이뤄졌다. 딱 1년 만이다. 6월 9일 ‘나눔과 동행’팀과 함께 한 학교 준공식은 마을 잔치로 이어졌다. 17명의 학생들이 이제 새 학교에서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런 고마움을 담아 새학교 이름을 ‘칼린촉 직지초등학교(SHREE KALINCHOK JIKJI PRIMARY SCHOOL)’로 지었다.

환하게 웃는 마을 주민과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흐뭇해하는 그의 마음 한 구석엔 또 ‘여기에 필요한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이 펼쳐진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엔 의료 지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벌써 그의 머릿속엔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지고 있다.

이렇게 그가 네팔에 마음을 쏟는 데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네팔은 제 마음 속 제2의 고향입니다.”
그는 네팔이 또 다른 고향이라고 답한다. 그래서 그에게 히말라야 오지 마을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또 다른 가족이다.

“2018년엔 직지원정대와 함께 ‘직지봉’에 다시 오르려합니다. 그 때 약속했거든요. 10년 후에 다시 오자고.”
평범한 산악인에서 지구촌으로 영역을 넓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그의 삶은 산에서 시작했으니 산에서 끝날 것이다.

정예훈 / 프리랜서 (사진 : 서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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